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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6 알바하다 1000만원짜리 그림을 찢어먹다. 105

알바하다 1000만원짜리 그림을 찢어먹다.

알바하다 1000만원짜리 그림을 찢어먹다.

대학 안나오면 아르바이트도 하기 힘들어.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는 군입대 전 6개월 정도 미술품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건 뭐 이삿짐보다는 힘들진 않지만 정말 중노동입니다. 특히나 여름이 되면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다른 승객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땀에 쩔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가뜩이나 더운데 하는 일이 작가들의 전시회장에 가서 있는 시간도 꽤나 있다보니 여름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오는걸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덕분에 한여름에도 청바지에 반팔티셔츠를 입고 가야하니 오죽 더웠겠습니까. 그러다가 엘레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꼭대기라도 걸리는 날에는...어휴~~


사건이 일어난 날도 정말 무더운 한여름날이었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쭉쭉 떨어지는 날인데 전시회장에서 철수해서 목동에 있는 xx아파트 5층에 있는 어느 화가분의 집으로 작품을 옮기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사장 형도 날씨가 더우니 미치겠다며 얼렁 해치우고 끝내버리자고 서두르자는 말을 계속 반복하시곤 했죠. 저 또한 땀에 찌들고 지쳐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엘레베이터도 없어 작품을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니 다리에서 비명소리가 절로 들리더군요.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기를 2시간 정도...
이제 일이 거의 다 마무리 되어가고 이제는 대형 작품들만 옮기면 그날의 작업은 끝이었습니다. 대형작품 하나를 5층에 올려놓고는 사장형은 내려가시고 저는 작품이 들어가는 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공간이 비좁아서 일단 큰 작품 하나를 벽에 기대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가 하도 더워 창문을 열어놓았는데 바람이 세서 그림이 넘어가버린 겁니다. 물론 어설프게 대충 세워둔 제 잘못이 컸죠. 와장창창 유리는 다 깨지고 그림은 반대편에 서있던 시계모서리에 찍혀서 찢기고 말았습니다. 순간 숨이 멎을것만 같더군요. 정말 난감해서 무슨 말이 나오질 않더군요. 서둘러 사장형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올라와달라고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뭐야? 안 다쳤어?"
"예, 전 괜찮은데...작품이..."
"괜찮아, 괜찮아! 유리야 다시 해넣으면 되지."
"그림도 찢어졌어요..;;"



형의 표정이 급변하더군요. 그림이라는 것이 정말 부르는게 값입니다. 특히나 대형작품들의 경우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 작품의 경우 천만원 가량 한다는 것을 전시회장으로 작품을 옮길 때 들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미술품 택배의 경우 고가의 작품들을 많이 취급하다보니 보험에 가입이 되어있다고들 많이 말씀하시는데요. 실상 보험가입이 안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보험사에서도 꺼려하거니와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제가 알기로도 사장 형은 보험가입도 안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정말 놀라 까무러칠 상황인거죠. 처음 일을 시작할 때도 사장 형이 자주 하던 농담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너 그림 하나 망가지면 평생 노예계약 맺고 일해야 된다...다...다...다..."
"너 그림 하나 망가지면 평생 노예계약 맺고 일해야 된다...다...다...다..."
"너 그림 하나 망가지면 평생 노예계약 맺고 일해야 된다...다...다...다..."
"너 그림 하나 망가지면 평생 노예계약 맺고 일해야 된다...다...다...다..."



사장 형의 표정은 작가분의 표정에 비해 양반이었습니다. 자신이 몇 달에 걸쳐서 정성들여 그린 그림이 찢어진 모습을 보았으니 그 기분이 오죽 했겠습니까. 유리조각이 남아 있는데도 그림을 만지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일단 급하게 깨어진 유리조각들을 모두 청소하고는 작가분께 정말 거듭 죄송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혔습니다. 일당 6만원을 받으려고 아르바이트를 나갔는데 이건 정말 평생 무보수로 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암담하더군요.


헌데 정말 다행히도 이 작가분께서 너그러이 용서를 해주셨습니다. 찢어진 작품은 화방에 맡겨서 복원을 하고 새로 액자를 해서 가져다드리기로 하구요. 복원을 하면 별로 티는 나지않지만 작가분 입장에서 싫다고 하시면 정말 어쩔 수 없이 변상할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그게 제 돈이 됐든 사장 형의 돈이 됐든지요. 여성작가분이셨는데 제 또래의 아들이 있는데 당시에 군대를 갔었나봅니다. 같은 또래의 저를 보고 그냥 열심히 산다는 생각에 뭐라고 할 수가 없으셨다고 합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정말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보지만 이때의 작가분과 사장 형은 제 가슴속에 정말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네요.^^


공감하셨다면 추천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미자라지
☆아르바이트경험☆ 2009. 5. 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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