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이나 버림받은 우리집 강아지

세번이나 버림받은 우리집 강아지

저희집에서는 코카 한마리를 키웁니다. 제가 군대간 사이에 전에 키우던 말라뮤트 두마리가 모두 죽었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놈들이 죽으니 누나가 한달 내내 밥도 안먹고 눈이 탱탱 붓도록 울기만 하며 지냈습니다. 엄마가 누나를 달래주려고 새로운 강아지를 분양받았는데 그놈이 바로 지금 키우는 코카입니다.

<처음엔 두 녀석을 데려왔는데 한놈이 장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버렸네요.>

<누나를 한달 내내 울게 만든 놈입니다. 위에 어렸을 적 사진으로는 오른쪽 통통했던 놈입니다.>

눈도 채 뜨지못한 상태로 저희집에 들어와 밥만 축내는 이녀석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누나와 엄마가 정말 물고 빨고 해가면서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누나는 정말 아마추어같은 실수를 저질러버렸습니다. 밥먹을 때도 같이 먹고 잘 때도 같이 자고...화장실 갈 때만 빼고는 하루종일 붙어 있었던 것이죠. 덕분에 이녀석은 지가 사람인줄 압니다. 자기만 놓고 가족 모두가 외출을 하면 가족들이 모두 외출에서 돌아올 때까지 쉬지않고 짖어대는 것은 기본이고, 집안 살림을 정말 개판으로 만들어놓기 일쑤였죠. 그런 자신의 행동이 후에 얼마나 큰 화를 불러들일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중에 제가 버릇을 고치겠다고 나서봤지만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더러운 습관이 쉽게 고쳐질 리가 없었죠. 그렇게 시간이 가고 그녀석에게 불행의 시간이 닥쳐오게 됩니다. 드디어 누나가 시집을 가게 됐죠. 누나가 시집을 가게되면 이제까지 대부분 이녀석 밥을 주고, 목욕시켜 주고, 미용해 주고, 함께 잠을 자던 보호자가 없어지는 겁니다. 누나는 꼭 이녀석을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했지만 시집에서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다른 가족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저희 가족은 누나의 결혼 전에 큰 결정을 내립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골칫덩어리이자 우리집의 막내입니다.^^>


집에 사람이 없으면 하루종일 울고있는 이녀석을 위해 재분양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맞췄습니다. 어차피 우리집에 있어봤자 하루종일 혼자 보내야하니 그것보다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죠. 결국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서 경기도 연천에 있는 여자분을 택했습니다. 강쥐를 키워본 경험도 많고, 이미 키우고 있는 녀석들도 있고, 게다가 남편이 직업군인이라 하루종일 집에서 강쥐들만 돌봐준다니 저희로서는 정말 감사한 마음 뿐이었죠. 있는 짐 없는 짐 다 꾸려서 차 트렁크에 꾹꾹 눌러담고 4시간 가까이를 운전해서 경기도 연천에 있는 새 주인에게 보냈습니다. 분양비라고 하며 내미는 돈을 그 돈으로 우리 강쥐 간식 사주는데 쓰시고 정말 잘 키워달라며 식사대접까지 했습니다. 가족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다시 못볼 그녀석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더 만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런 저희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름이 채 못되어 이녀석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연인 즉슨 이녀석이 새 주인을 주인으로서 인정을 안해주더란 겁니다. 사료를 줘도 먹지도 않고, 쓰다듬어 줄라치면 호두코(으르렁 거릴때 코가 찌그러지는 모양이 호두가 닮아서 저희 가족은 그렇게 부릅니다^^)가 되어가며 으르렁대다 결국은 새 주인을 물었고, 결국 그 주인은 그녀석을 기르는 것을 포기하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다시 저희집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녀석이 다시 돌아오니 일단 가족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막상 대책은 없지만 그저 신나고 즐거웠죠. 이녀석도 꼬리를 살랑대며 애교를 피워대니 어찌 귀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선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가 키우기엔 정말 여건이 안됐거든요. 당시 이웃집에서도 시끄럽다고 신고들어간 적도 몇 번이나 되었고 해서 말입니다.

차선책으로 생각한게 시골에 계신 할머니댁에 보내는 겁니다. 저희가 다시 못보는 것도 아니고 보고싶으면 가끔 가서 볼 수도 있으니 정말 이거다 싶었죠. 또다시 차를 몰아 이번에는 평택으로 향했습니다. 데려다주고 오는 길은 정말 슬펐지만 그래도 또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하며 집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결국 이녀석은 또다시 저희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비교적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따라서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시골에서도 하도 짖어대니 신고가 들어가고 이웃들이 뭐라하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이젠 도저히 못키우시겠다고 선언하신거죠.


또 다시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어머니께서 한마디하셨습니다.
"큐티가 저렇게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도 우리랑 같이 사는게 쟤한테도 좋겠다. 하지만 하도 짖어서 이웃들에게 미안하니 애견훈련소에 보내서 짖지않는 훈련만이라도 시키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날 바로 애견훈련소를 알아보고 그리로 향했습니다. 한달에 70만원이란 어이없는 가격에 놀랐지만 가족 모두 70만원이라는 돈보다는 가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애견훈련소에서 두 달을 보냈습니다. 두 달 동안 주인을 보면 버릇이 없어져서 훈련에 방해가 되니 자제해달라는 부탁에 억지로 참아가며 딱 두 번의 면회만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훈련소 퇴소하는 날...(군대 제대한 저도 훈련소에서는 단 7주 밖에 안 있었는데...이녀석이 저보다 낫죠..ㅋ)
어찌된 일인지 저희 눈에는 달라진게 하나도 없어보입니다. 앉아, 일어서, 엎드려, 돌아...이런 것들이야 제가 훈련을 시켜서 원래 할 줄 아는 녀석이었고, 중요한건 사람이 없어도 짖지 않는 것인데 데려온 바로 다음날부터 이제까지 참아왔던 울분을 모두 표출하려는 듯 미친듯이 짖어대더군요.

그렇게 또 한두달이 지나고...또 다시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결론은 성대수술이었습니다. 이것만은 절대로 안된다는 고집으로 여기저기 팔려보냈던 것인데 결국은 이런 결정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가족들 모두 슬퍼했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평생 우리 가족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녀석도 좋아할거라 위로하며 병원에 보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하루를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온 날 이녀석은 온몸으로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렇게 이녀석의 계속되던 이사는 끝이 났습니다.

저희 강쥐에게 성대수술을 시켰다는 사실만으로 저희 가족을 야만인처럼 보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말을 못하면 답답한 것처럼 개도 짖지못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짖지못하는 스트레스보다 저희와 떨어져 있는 스트레스가 더 클것이라 생각하고 저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술을 했습니다. 과연 어떤게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이제까지 저희 가족이 했던 수많은 고민들이 다 쓸데없었다는 듯 비웃으며 그녀석은 지금 옆에서 잘도 짖고 있네요. 이 성대수술이라는게 꼭 100% 목소리를 낼 수 없는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저희 강쥐가 수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만 알고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저희가 목소리를 너무 시끄럽지만 않도록 해달라고 수의사선생님께 부탁드렸고 수의사 선생님도 가능하다고 하시며 수술을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수술이 잘못됐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잘 짖습니다..물론 전보단 훨씬 작은 소리지만 집안에서 울면 정말 시끄러울 정도로요. 다행인 것은 이웃분들께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라는 겁니다. 덕분에 그녀석은 지금도 거실에서 지멋대로 뛰놀며 저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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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라지
☆황당경험☆ 2009. 4. 1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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