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만원에 판자촌 철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단돈 5만원에 판자촌 철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작년 여름의 일입니다. 친구놈 중에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경호업계에서 일하는 놈이 있습니다.
방학 때고 한데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서 낑낑대고 있자 친구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야, 아르바이트 할래?"
"뭐, 경호? 페이가 얼만데?"
"일당으로 5만원."
"앙, 한명 더 되냐? 후배랑 같이 가게."
"그래, 자리 많다니까 데리고 와."
5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아르바이트를 가기로 했습니다.
전에도 가끔씩 시간이 맞으면 했던 아르바이트라 큰 부담을 갖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날 일을 나가서 보기 전까지는 어떤 일인지를 모르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지만 전에도 몇 번 경험이 있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축구장 경호알바, 골프장 이권다툼, 거리정화 등등...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솔직히 버스에서 하루종일 대기하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가끔씩 시간이 맞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하는 아르바이트라 부담이 없었습니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적지않은 돈을 주기때문에 더 매력이 있기도 했구요. 그런데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천명 정도의 청년들이 새벽5시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상도동의 판자촌이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할까 당황했지만 아침에 팀장들이 말해주기로는 합법적인 일이며, 그냥 서있기만 한다고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일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판자촌 주변 길목에 서서 사람들의 통행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고 철거팀들이 제가 지키는 길목을 지나가고나서야 무슨일을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멀리서 통행만을 통제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안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급하게 지원을 해달라는 무전이 왔습니다. 지원해달라는 장소로 가보니 정말 아비규환이더군요.
대부분의 집들이 철거에 대비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한 상태였지만 남아있는 집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철거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집에 계시던 분들이 갑자기 이렇게 철거를 해버리면 어찌하냐며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더러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셔서 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않고 철거는 진행되었습니다. 강제로 주민들의 이삿짐을 보관소로 옮기기 위해 빼내는 모습을 보니 보고있는 저까지 마음이 울컥하여 눈물이 날것만 같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 편히 쉴 수 있었던 보금자리를 빼앗긴 주민들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당장 짐을 옮길 곳조차 없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화물차에 실려 보관소로 옮겨지는 살림살이들을 지켜만 봐야했고, 냉장고 속 음식들은 보관이 안되니 당연히 다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매스컴에 연락해서 취재를 오라고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오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temadic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087
실제로 처음 보는 광경이라 굉장히 당황했고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자리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야 당장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친구놈은 생업이 달린 일이기에 친구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없는 사람들 우는 꼴 보라고 친구한테 후배까지 데리고 오라고 한건지...이런 일도 일이라고 저한테 아르바이트를 나오라고 한 친구놈한테 정말 화가 났습니다. 나름 반항한답시고 불편한 마음에 정말 물건 하나 옮기지 않았고 가만히 서있다 온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바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 친구놈에게 이 일 이후로 정말 많이 뭐라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께서 언제나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벌어도 되는 돈이 있고, 벌어서는 안되는 돈이 있다.'
'전에는 요즘같은 세상에 돈이 전부다. 돈만 많이 벌면 최고다'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뭣모르고 따라와 하루종일 불쾌했던 후배...
남의 가슴에 대못 박아가며 벌어온 5만원...
돈 5만원때문에 나 자신이 말로만 듣던 용역깡패가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는 돈이 궁해도 절대 경호업체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친구놈과도 한동안 연락을 하지않고 지냈습니다. 이런 일들때문에 경호업체나 철거업체 등 용역업체들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인원부터 모집하는 모양입니다. 용역업체 측에서는 정부에서 보상을 해줬으며,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판자촌에 사시는 분들은 대다수가 자기 소유의 집이 아니고 월세나 전세를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세를 내며 살고계시는 분들에게는 보상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사비용 마저도 말입니다. 정말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나 이런 아르바이트 하고계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고계신다면 부탁드립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흘리고 있던 철거민들이 우리가 아는 주변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그런 일로 돈을 버는 건 아닌것 같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시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다음글 : 뒤 안보고 후진한 차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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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의 일입니다. 친구놈 중에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경호업계에서 일하는 놈이 있습니다.
방학 때고 한데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서 낑낑대고 있자 친구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야, 아르바이트 할래?"
"뭐, 경호? 페이가 얼만데?"
"일당으로 5만원."
"앙, 한명 더 되냐? 후배랑 같이 가게."
"그래, 자리 많다니까 데리고 와."
5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아르바이트를 가기로 했습니다.
전에도 가끔씩 시간이 맞으면 했던 아르바이트라 큰 부담을 갖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날 일을 나가서 보기 전까지는 어떤 일인지를 모르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지만 전에도 몇 번 경험이 있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축구장 경호알바, 골프장 이권다툼, 거리정화 등등...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솔직히 버스에서 하루종일 대기하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가끔씩 시간이 맞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하는 아르바이트라 부담이 없었습니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적지않은 돈을 주기때문에 더 매력이 있기도 했구요. 그런데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천명 정도의 청년들이 새벽5시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상도동의 판자촌이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할까 당황했지만 아침에 팀장들이 말해주기로는 합법적인 일이며, 그냥 서있기만 한다고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일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판자촌 주변 길목에 서서 사람들의 통행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고 철거팀들이 제가 지키는 길목을 지나가고나서야 무슨일을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멀리서 통행만을 통제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안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급하게 지원을 해달라는 무전이 왔습니다. 지원해달라는 장소로 가보니 정말 아비규환이더군요.
대부분의 집들이 철거에 대비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한 상태였지만 남아있는 집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철거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집에 계시던 분들이 갑자기 이렇게 철거를 해버리면 어찌하냐며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더러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셔서 바닥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않고 철거는 진행되었습니다. 강제로 주민들의 이삿짐을 보관소로 옮기기 위해 빼내는 모습을 보니 보고있는 저까지 마음이 울컥하여 눈물이 날것만 같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 편히 쉴 수 있었던 보금자리를 빼앗긴 주민들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당장 짐을 옮길 곳조차 없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화물차에 실려 보관소로 옮겨지는 살림살이들을 지켜만 봐야했고, 냉장고 속 음식들은 보관이 안되니 당연히 다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매스컴에 연락해서 취재를 오라고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오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처음 보는 광경이라 굉장히 당황했고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자리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야 당장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친구놈은 생업이 달린 일이기에 친구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없는 사람들 우는 꼴 보라고 친구한테 후배까지 데리고 오라고 한건지...이런 일도 일이라고 저한테 아르바이트를 나오라고 한 친구놈한테 정말 화가 났습니다. 나름 반항한답시고 불편한 마음에 정말 물건 하나 옮기지 않았고 가만히 서있다 온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바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 친구놈에게 이 일 이후로 정말 많이 뭐라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께서 언제나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벌어도 되는 돈이 있고, 벌어서는 안되는 돈이 있다.'
'전에는 요즘같은 세상에 돈이 전부다. 돈만 많이 벌면 최고다'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뭣모르고 따라와 하루종일 불쾌했던 후배...
남의 가슴에 대못 박아가며 벌어온 5만원...
돈 5만원때문에 나 자신이 말로만 듣던 용역깡패가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는 돈이 궁해도 절대 경호업체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친구놈과도 한동안 연락을 하지않고 지냈습니다. 이런 일들때문에 경호업체나 철거업체 등 용역업체들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인원부터 모집하는 모양입니다. 용역업체 측에서는 정부에서 보상을 해줬으며,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판자촌에 사시는 분들은 대다수가 자기 소유의 집이 아니고 월세나 전세를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세를 내며 살고계시는 분들에게는 보상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사비용 마저도 말입니다. 정말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나 이런 아르바이트 하고계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고계신다면 부탁드립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흘리고 있던 철거민들이 우리가 아는 주변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그런 일로 돈을 버는 건 아닌것 같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시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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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경험☆
2009. 5. 3. 00:18